
1218년, 몽골의 징기스칸이 호라즘으로 사절을 보내 무함마드와 동맹 제안을 하지만 상대의 모욕적인 행동으로 전쟁이 발발하죠.
무함마드는 징기스칸을 모욕하기 위해 그의 사신들의 수염을 깎고 모욕적인 서신을 보낸다죠.
징기스칸은 이를 받아들이고 '네가 전쟁을 선택했으니 너의 소원대로 해주겠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전쟁을 시작합니다.
징기스칸은 몽골을 통일하고 서하를 거의 박살내며, 이 경험이 이슬람 세계에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기며 세계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요.

이슬람 세계의 샤한테 초원의 칸, 징기스칸이 서신을 보내며 전쟁을 선택한 샤의 소원대로 금나라를 멈추고 호라즘으로 진격해요.
하지만 호라즘 인구가 300만 이상인데 비해 몽골군의 전투병력은 10만이었기 때문에 몽골군은 전투 뿐만 아니라 보급도 가서 해야 했어요.
몽골군은 전투와 보급을 모두 진행하며, 썩을 놈들과의 전투로 명성이 높았어요.

몽골군은 몽골 통일과 금나라 공격으로 단련된 전술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하라는 사막 지역으로, 방어적인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죠.
몽골군은 사막을 건너오며 오아시스를 활용하고, 사람을 기용하여 부하라를 점령했어요.
부하라에서 수십만 명의 학살이 일어나며, 도시들이 무서워하여 항복하게 되었어요.
징기스칸은 부하라에 진입하여 신의 심판을 선언하고, 학살과 저지먼트 데이를 실시했어요.

사마라칸트는 천혜의 요새, 병력 10만으로 한 주 동안 못 버텨 전멸당했어요.
몽골 군대는 뛰어난 전투 기술과 공성 능력으로 사마라칸트를 약 일주일 만에 함락시켰어요.
그 결과, 사마라칸트 병력의 절반이 대가리가 깨지고 나머지 절반은 숨어도 박살났어요.
몽골 군대는 모든 사마라칸트 병력을 처형하여 끝없는 학살을 벌였죠.

호라즘에서 학살을 당한 백성들이 메르브로 도망가 모였어요.
메르브에서 몽골의 툴루이가 쳐들어와 학살을 집행했어요.
메르브의 전 인구가 성 밖으로 나와 학살을 당했으며, 도시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어요.
메르브 학살 이외에도 우르겐치에서의 학살이 유명하며, 몽골은 도시 자체를 없애버리는 전략을 사용했어요.

러시아에게 면죄부를 남겨 도망갈 구멍이 생겼고, 몽골군은 러시아를 쫓아 200km 이상을 추격전에서 대가리를 깨고 전투를 벌였어요.
러시아 거의 전 병력 중 3분의 2가 전멸했는데, 이는 몽골의 전략과 전술 덕분이었답니다.
이 전투에서 몽골은 병력을 전멸시키고 금나라를 멸망시켰어요.
축적된 전략과 승전보 경험으로 유명한 명장 수부타이는 60번이나 대회전인 회전 전술을 시켰대요.

수부타이가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럽 정벌을 건의하여, 징기스칸이 그의 아들과 함께 유럽 정벌을 시작하게 했어요.
이 유럽 정벌은 엄청난 규모의 전투로, 유럽을 끝까지 밀고, 광대한 스케일의 전투를 벌였어요.
그 당시에는 아직 남송 같은 지역이 남아 있었는데, 수부타이와 징기스칸은 무거운 손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깨고 서유럽 정벌을 계속했어요.
이 전투는 긴 시간이 걸렸는데, 러시아를 밀고 인도를 지나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깨고 다시 서유럽까지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수부타이가 이 전투에서 총사령관으로 임명되는 등 극적인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몽골 제국의 규모와 전투력에 대해 설명하며, 세계 최대의 학살 사례인 몽골의 유럽 정벌을 언급해요.
몽골은 서하와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슬람 제국을 망치며 호라즘을 대거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유럽 정벌을 위해 몽골은 기동력과 스케일을 바탕으로 여러 국가를 정복했는데, 이슬람 제국, 서하, 금나라 등을 멸망시켰어요.
한편 유럽 정벌 중에는 몽골이 겨울에 군대를 투입하며, 시베리아와 키예프 등을 함락시키는 등 엄청난 전략과 기동력을 보였어요.
몽골 제국은 러시아를 정복하며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들을 지배하였으며,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 치욕적인 역사로 여겨져요.

폴란드에서는 폴란드의 운명을 건 네그니차 전투가 벌어졌죠.
당시 유럽에서 기사단들이 모여 5만 대군을 이뤄 강력한 전투를 치렀어요.
하지만 몽골의 군사와 부딪혀 당연히 패배를 당하고, 폴란드의 왕인 하인리히 1세는 사망하였어요.
폴란드를 지나 몽골이 헝가리로 진격할 때 유럽은 헝가리의 강력한 병력과 다국적 군으로 항전했어요.
이로 인해 유럽에서 대규모 전투가 펼쳐졌어요.

유럽에서 10만 명의 대군이 모여 헝가리 Army와 몽골군이 대치하고 전투하는 모히 대전투였어요.
몽골 병력은 전략적으로 우월하며, 헝가리와의 대치 후 이쪽으로 몰려와 건너왔어요.
모교 병력이 도착하면 헝가리와 몽골 양측이 격전을 시작하며 전열이 무너지고 병력이 전멸했어요.
이 대전투로 동유럽은 실질적으로 병력을 거의 전멸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곧 유사한 전투가 벌어질 예정입니다.

유럽의 연합군과 몽골의 대군이 대치하는 대전 'Battle of Mohi'가 유명해요.
몽골의 침략으로 헝가리,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순식간에 밀려났죠.
이로 인해 동유럽은 사실상 병력이 없어지고, Holy Roman Empire와의 결전이 남았어요.
몽골의 침략으로 오크가 유럽에서 등장하고, 몽골을 모티브로 한 파워풀한 존재가 되었어요.
Holy Roman Empire와의 결전에서 오고타이칸이 사망하며, 유럽의 구원자로 평가받는 역대급 사망이 일어났죠.

2대 칸이 사망하면서 3대 칸의 후계자를 뽑기 위해 지도자들이 몽골로 모이던 중 간밤에 회의를 위해 돌아오던 중 후퇴해요.
몽골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역사상 단 한 번이 되었을 역사적 타이밍에서, 2대 칸이 사망하면서 몽골의 진군이 멈추게 되었어요.
유럽의 구원자로 불리는 몽골이 유럽을 지배할 수 있었고, 만약 그랬다면 서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을 것이에요.
한편, 몽골의 진군 이후로는 명나라 등이 유럽까지 접근하여 싸워야 했으나 그 다음 시기부터는 더 이상 전쟁의 방법이 없게 되었어요.

러시아 선제 공격에 털려 유럽을 떠나며 회군하는 동안 고된 싸움과 갈등을 직면하게 되었어요.
순발력이 중요한 상황에서 위치 선정과 결정력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화살표 순서대로 하는 전략으로, 호라즘, 러시아, 이로 등 서정적인 지역을 지나며 싸움에서 이기게 되었어요.
전쟁 종전 후, 녹색과 푸른색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만 실패하며 전략에 대한 반성을 하며 비엔나에서 싸움에서 그치게 되었어요.

'회군'을 하면서 진행한 여행에서 몽골에 도착해 모든 전투에서 털리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곳에서 'Holy Roman Empire'의 근처로 왔는데, 병력 조달이 안 된 상태에서 열심히 털린 경험을 살렸어요.
몽골에서 돌아올 때에도 계속 털렸지만, 그 속에서도 집으로 돌아가서 3대 칸의 이름을 뽑는 등 흥미로운 경험을 많이 했어요.
또한, 모든 전투를 겪은 몽골 고려장군 '수부타이' 아저씨를 만나 인상깊은 경험도 했어요.

몽골의 영웅 수부타이가 남송 원나라를 치러 갈 때는 이미 70세를 넘어섰기 때문에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죽어 갔어요.
수부타이는 대단한 전투와 대회전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 침대에서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부타이의 고향을 침략한 원나라는 이어지는 통일 과정에서 번영할 수 있었어요.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죽다 살아난' 역사지만 몽골이 결국 차츰 잘려났고, 나중에는 무굴제국에 먹혔어요.
이야기의 한계로 수부타이 이외에 무려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있는데, 이어서 다루겠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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